반려동물 여행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여행 강진 가우도

웰시코기볼트아빠 2023. 7. 24.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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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여행

강진 가우도 

 

걷기에 좋다는 얘기만 듣고 전남 강진군의 가우도로 향했다. 강진은 다산초당을 제외하면 낯설다. 하지만, 산을 올라야만 하는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쿠키에게는 벅찬 걸음이다. 쿠키를 데려오고 등산을 멀리하게 된 것은 온전히 쿠키를 배려하는 마음 때문이다. 절대로 나이가 들어서도, 몸이 무거워져서도, 체력이 저질이 되어서도 아니다. 절대로.

 

서쪽? 또는 동쪽?

강진만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가우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기에 아무 때나 편하게 오갈 수 있다. 다만, 자동차는 오갈 수 없는 보도교이기에 육지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들어가야만 한다. 가우도 내 펜션을 이용하는 투숙객은 펜션에 부탁하면 전동카트를 타고 와서 짐과 사람을 실어가 버린다. 우리는 편리를 누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기에 고려하지 않았다.

그보다 힘든 결정은 가우도를 도암면 망호선착장에서 들어가야 할지 대구면 저두장터에서 들어가야 할지 정하는 일이었다. 좁고 가는 강진만을 품고 있는 강진군은 전체적으로 알파벳 A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우도는 A의 양쪽 기둥을 연결하는 가운데에 누운 받침과도 같다. 망호선착장에서 가우도를 거쳐 저두장터로 가는 직선 길은 3km에 불과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서는 강진군 읍내까지 올라가 30km를 돌아가야만 한다. 결국, 강진군의 한쪽을 선택하면 반대쪽으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다.

 

다산초당을 들려야만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망호선착장이 있는 서쪽을 택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다산초당을 갈 필요가 없어진 이상 편한 마음으로 저두장터가 있는 동쪽으로 향했다. 저두장터 주차장에 도착하니 가우도와 가우도로 연결된 청자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우도 반대편에서 망호선착장 쪽으로 연결된 다산다리보다는 길이가 훨씬 짧아서 걷기에는 오히려 부담이 없다. 가우도에서 유명한 짚트랙도 이쪽으로 내려오기 때문에 짚트랙으로 타고 30초 만에 가우도를 탈출할 계획이 있다면 꼭 저두장터로 와야 한다. 잠깐, 짚트랙? 쿠키를 쳐다보니 안 된다고 눈빛을 보내는 것만 같다.

기꺼이 흙 묻히는 길 

가우도는 섬 전체를 따라 산책길이 놓여 있다. 청자다리를 건너 가우도를 건너자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북쪽의 부드러운 흙길과 해변과 더 가까운 남쪽의 데크길이다. 쿠키에게 흙을 먼저 밟게 해주고 싶어서 북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았다. 쿠키도 우리 결정에 만족해하는 것 같다. 다리에서 내려 흙길을 밟자마자 걸음이 빨라진 것을 보면.

 

흙길이라고 하지만 관리가 무척 잘 된 길이였다. 어둠에 대비한 조명시설도 길을 따라 쭉 세워졌고, 바닷가로 조금 붙으려 하면 어김없이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풍경도 다양하고, 경사도 가파른 곳이 하나도 없어서 반려견을 동반한 산책길로 손색이 없었다. 오랜만에 쿠키 발에 흙을 묻히고 나니 견주로서의 책임을 조금은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세상 편안한 출렁다리

숲길을 따라 조금 가니 출렁다리가 나왔다. 예전에는 가우도와 육지를 잇는 다산다리와 청자다리를 출렁다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두 다리는 흔들림이 전혀 없는 너무나 튼튼한 다리이다. 그러다, ‘진짜 출렁다리가 생기면서 더 이상 두 다리를 출렁다리라고 고집해서 부를 이유가 사라졌다.

새 출렁다리의 길이는 150m로 비교적 짧은 편이고 높이도 낮아서 우리에게도 쿠키에게도 적합한 길이와 높이이다. 실제로 밟아 보니 흔들림도 적고 스릴을 더한다는 이유로 아래가 훤히 보이는 유리나 구멍이 뻥뻥 뚫린 그물을 놓은 것도 아니어서 좋았다. 다만, 촘촘하긴 해도 가운데에 쇠망이 있어 발이 작은 강아지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전체적으로 아찔함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심심한 출렁다리일 수 있겠지만, 쫄보인 우리나 쿠키에게는 너무 적합한 다리였다.

 

출렁다리를 건넌 후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실은 출렁다리를 건너며 보았던 전망대로 가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번 정해진 발걸음은 게으른 관성의 법칙에 따라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게으름이 행운이 된 것인지 발견한 대나무숲 길은 지금까지의 산책길과는 또 너무 달랐다. 대나무숲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잔잔하게 일어나는 바람에 대나무숲이 흔들리는 소리가 ASMR처럼 들려온다. 쿠키가 눈을 감은 것을 보고선 우리도 잠시 눈을 감았다.

시골이 아니라 여유입니다

꿈속 같았던 대나무숲에서 내려오니 정글 끝에서 발견한 미지의 세상처럼 가우도 마을이 나타났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한옥은 넓은 잔디 마당에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션뷰까지 갖추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만 한다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에게는 최적의 집이 아닐까. 늘 도시를 벗어날 수 있기를 꿈꾸지만, 언제가 현실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빈 마음을 이렇게 여행으로라도 채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까.

 

가우도 마을은 이제 10여 가구만 남았을 정도로 매우 작은 마을이지만 집들이 모두 예쁘다. 도로까지 시멘트 바닥이 아닌 보도블록으로 가지런히 깔린 것에서 마을의 여유가 엿보였다. 아름다운 마을의 풍경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마을이 너무 작은 탓에 곧 마을의 끝이 나오고 말았다. 그 끝은 강진의 서쪽 편으로 나가는 다산다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가우도의 식당들과 황가오리빵집까지 이곳에 다 모여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도암면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대구면이 조금 섭섭해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는 이번에 대구면으로 왔으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려나 싶었다.

 

정상에 오르기 위한 선택

식당들과 다산다리를 지나니 처음 가우도에 내려 외면해야만 했던 남쪽 데크길이 시작됐다. 바다와 한결 가까워지고 발바닥의 촉감이 달라지니 또 감흥이 달라진다. 쿠키에게도 그럴 것이라 여겨졌다. 다만, 숲길도 아니고 남쪽이라 해가 더 잘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잠시 멈춰 선크림을 고쳐 바른 후 어쩔까 싶어 쿠키를 한번 바라본다. 미용했을 때 앞머리가 눈을 조금은 가리게 둔 선택에 조금 안도 되는 마음이 들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앞머리를 짧게 잘라 쿠키의 귀엽고 동글동글한 검은 눈동자를 항상 보고 싶었지만, 쿠키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했다. 미용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니까.

데크길을 가는 중간쯤에 청자타워로 오르는 길이 나왔다. 가우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청자타워까지 가장 완만한 경사의 길이다. 하지만, 가장 긴 길이기도 하다.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이 말씀해주셨다. 가우도에서 청자타워로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 그중 가장 편안한 길은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기계가 아닌 인간의 힘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은 짧지만 힘든 길이거나 길지만 쉬운 길이다. 짧으면서도 쉬운 길이라는 것은 없다. 우리는 쿠키를 고려해 길지만 쉬운 길로 오르기로 했다. 어르신 말씀대로 포장된 도로만 쭉 따라가니 청자타워가 나타났다.

 

낮은 산이어도 정상에 오르니 확실히 풍경이 달랐다. 항상 익숙했던 지상의 눈높이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고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보는 시선과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래서 나이가 들어도, 몸이 무거워도, 체력이 달려도, 정상을 포기하기가 어렵다. 동반한 반려견 때문에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적어도 가우도에서 만큼은 반려견 덕분에 더 힘을 낸 오름길이었다. 반려견과 함께라서 2.5km도 금방이었던 산책길이었다. 반려견과 함께라서 행복한 하루였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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